흐르는 산

좌. <No. 23-1-6>, 325x140cm, oil on canvas, 2023
우. <No. 23-2-2>, 53x41cm, oil on canvas, 2023

 존재는 무한하게 변화한다. 켜켜이 쌓여 있는 산의 능선은 물길이 되고 파도가 된다. 부서지는 파도의 파편은 우주가 되고 은하수의 파편이 된다. 우주의 파편은 산이 된다. 높은 산은 깊은 심해가 되고 망망한 우주가 된다. 우주는 무가 되었다가 다시 산이 된다. 산이 된 우주는 우리의 마음이 된다. 

 산은 무한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존재한다. 범준의 그림에 등장하는 수많은 겹쳐진 산의 상태는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과 불확정성을 이야기한다. 산은 지금도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범준은 산을 그리며 삶을 이야기한다. 하나의 산은 하나의 삶이고 하나의 이야기이자 역사이다. 첩첩산중에서 산이 겹쳐지고 포개지는 것은 무한한 이야기,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의 무한성을 의미한다. 

 범준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서 무한했던 공간에 산을 그리고 경계를 만듦으로써 공간을 유한하게 만든다. 그리고 유한해진 공간에 무한하게 증식하는 산을 그려 공간을 가득 채우는 방식으로 공간을 사라지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은 유한했던 공간이 사라지면서 다시 무한으로 가는 역설을 보여준다. 모든 그림이 지워진-가득 찬- 공간에는 마음이라는 무한한 우주만이 남는다.